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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역사해설 일부분
2018-10-13 21:51:05
나단
조회수   198

 

(2018,9,30 서문역사의 날에 역사해설을 시작하면서 드린 앞부분 이야기)

 

 

우리교회는 125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귀감이 되는 인물이나 사건들을 상기하면  신앙의 유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동일한 제목의 행사일지라도 과거와 현재와는 많이 달라진 것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살펴봄으로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새로운 지혜와 방법을 얻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창립기념행사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변화되어지는 오늘의 행사

근래 우리는 매해 6월 첫째주일이면 교회창립기념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75년전 1943년 6월에 우리교회는 창립50주년을 맞이하여 처음으로 기념행사를 하였습니다. 당시 교회는 심히 어려운 여건하에 있었습니다. 일본 총독부의 감시를 받던 때였습니다. 일본은 2년전 1941년12월7일에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며 미국을 향하여 선제공격을 개시하였고 우리나라에서까지 징병징용을 강행하며 농가의 식량을 강제로 공출해가기도 하였고 전쟁무기를 위하여 가정의 철재로된 살림 기구도 빼앗아 갔고 전국의 교회들도 종을 비롯하여 철재물건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는 이미 폐교가 되어 교회 안에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자리가 여전히 텅 비어있고 선교사들은 모두 추방명령을 받고 본국으로 갔습니다. 교인수가 현저히 줄었고 교인 중에는 아직도 일본경찰을 피하여 출석도 못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건에서 교회는 창립5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행사를 거행합니다. 행사 기념물로 창립50주년 기념탑을 세워놓았습니다.(현재 종각옆에 있음)

 

그후 20년이 지나서 1963년 70주년 기념행사를 하였는데 교회는 그때의 기념으로 당시 2층 예배당건물의 전면을 증축하고 높이 20미터 종탑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1973년에는 80주년 기념행사를 하였는데 기념물로 연건평320평 3층 교육관을 건축하였습니다(현 친교실건물). 또 10년이 지나 1983년에는 90주년 기념행사를 하였는데 연건평790평 현재의 본당건물을 건축 완료하고 헌당식을 하였습니다. 또10년이 지나 1993년에는 창립100주년 맞이하여 기념행사를 하고 지금의 본당 옆 연건평705평의 5층건물인 100주년 기념관을 건축하였습니다.

전에는 교회창립기념 행사를 10년마다 했었습니다. 그리고 기념행사를 마치면서 반드시 기념되는 기념물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창립기념 행사를 해마다 합니다. 그리고 간략하고 간소하게 합니다. 이것이 변화되어지는 오늘의 현상인 것 같습니다.

한국기독교시작

한국기독교역사의 시작을 1885년 4월 5일로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 근거로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선교사 아펜젤러가 선교사 신분으로 정식 허락을 받고 이날에 입국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직전해인 1884년9월에 미국북장로교에서 파송한 선교사 알렌이 의사의 신분으로 입국하여 제중원(광혜원)이라는 이름으로 서양식병원을 운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선교사임을 빍힌 적이 없고 직접적인 선교의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1866년에는 토마스 선교사가 이땅에 들어와 강화도 지역 몇 곳에서 성경을 배포하였는데 그는 곧 순교를 했습니다. 정부로부터 정식허가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유롭게 선교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선교사신분으로 허락을 받고 들어왔으므로 자유롭게 기독교 선교활동을 하며 학교와 병원등 기독교가 부흥 발전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입국한 날을 한국기독교 역사의 원년으로 봅니다.

 

7인의 선교사들이 오기까지

우리 남장로교 선교사들을 가장 사랑했던 언더우드는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자신이 부지런히 한국어를 익히면서도 후배선교사들을 위해 한국어 길잡이 책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열심으로 전도하며 개인 상담도 합니다. 교회도 시작하였고 고아원도 세웠고 학교도 세웠기 때문에 모두를 살피며 관리하는일이 많았습니다. 선교사들의 모임과 뒤늦게 온 후배 선교사들을 보살펴 주는일도 많았습니다. 틈틈이 성경 번역도 하고 찬송가 번역도 하고 편집합니다. 지방선교를 위해 몇차례 전도여행을 해 보았지만 더는 불가능하여 선교부에 선교사 증원을 요청하였지만 잘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언더우드는 1891년 미국에 들어가 여러지역 교회를 순회하며 강연을 할때마다 조선을 소개하고 조선선교사 지원자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선교비 후원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1891년 10월 남부지역의 테네시주 네슈빌시티에서 개최된 전국신학교 해외선교연합회 주최 집회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날 언더우드는 조선의 역사와 사회 문화 생활상을 소개하며 자신이 그동안 6년간의 조선 선교사로서 해왔던 경험을 설명하였습니다. 조선에서의 복음전파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며 선교사 지원을 간절히 요청하였습니다. 이어서 미국 벤더빌드대학에 유학중인 조선인 윤치오가 강사로서 강연을 진지하게 하였습니다. 이날 두 강사의 강연에서 듣는 자들은 모두가 뜨겁게 감동과 감화를 받았고 특별히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으로 듣고 응답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집회를 마치고 가까이에 있는 네슈빌시티의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 찾아가서 조선선교사 지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선교부에서는 당황하며 반응이 차가웠습니다. 선교부 관계자들의 말인즉 “선교하기에 조선은 아직 시기상조다. 그러므로 조선선교지원을 재고해주기 바란다, 그곳은 선교가 안 되는 곳이므로 아시아 쪽으로 가고싶거든 일본이나 중국으로 가라. 중국은 일찍부터 조선을 자기의 지배하에 넣으려는 야심을 품고 있으며 일본은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놓고 진행중에 있고 러시아도 조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조선은 스스로 나라를 유지할 능력이 없어 침몰해가는 가엾은 나라요 망해가는 나라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나라 사람들이 서양 기독교를 받아들일 리가 없다. 더구나 조선인은 옛부터 서양인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고 성격이 급하고 공격적이어서 언제 변을 당할지 모르는 위험한 지역이다. 선교도 않되면서 선교사들만 희생하기 쉽기 때문에 다시한번 신중히 생각해보라. 그리고 우리남장로교 선교부에는 조선선교에 대한 선교 예산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조선선교에 사용해달라고 헌금을 보내주는 교회도 없다. 그럴지라도 조선선교사로 반드시 가기를 원한다면 각자가 1년간의 생활비와 모든 여비를 마련해 오라 그러면 우리 선교부에서는 파송식을 해 주겠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었던 조선선교지원자들은 모두가 당황하며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더우드의 강연에서 감동받은 말씀을 기억하면서 실망하지 않고 모여서 의논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으니 돈 문제도 하나님이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이다.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자. 그들은 기다리는 기간을 2년으로 정하고 그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 조선선교사로 가기를 원하는가”라는 제목으로 1892년 2월 미션신문에 글을 올렸고 그동안 반대해왔던 선교부와 교회 지도자들을 찾아가 설득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손길과 훈련

그런데 기도를 시작한지 2개월이 되자 선교부로부터 통신이 왔습니다. 조선 선교사로 지원한 분들은 모두 8월경에 출발할 준비를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제정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입니다. 재정 문제가 이렇게 빨리 해결된 것에 대하여 선교지원자들 모두가 놀랐고 선교부에서도 놀랐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던 것입니다. 사람의 보기에는 불가능하게 보여 시기상조라 하였지만 하나님은 계획하신대로 그냥 진행하시는 것입니다. 이들 모두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손길을 다시한번 확실히 보았고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여 각자 처소로 돌아가 약 8개월동안 조선선교사로 떠날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들은 예고된대로 1892년 9월 7일 센트롤로이스 제일장로교회에서 모두 만났고 기쁨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날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서는 이들에게 선교사 임명과 동시에 조선선교사 파송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정대로 작은 상선에 몸을 의지하고 미국 센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하여 많은 날들을 바다에서 보내며 항해 하였습니다. 마지막 일본 요꼬하마 선교부를 거처 11월3일 약2개월만에 조선 땅 재물포에 모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이들을 일컬어 “7인의 선발대“합니다. 이들이 호남지역 개척선교사들입니다.

 

이들이 조선땅에 도착하여 격었던 첫해는 하나님의 강한 훈련이었습니다. 그들은 따뜻한 미국 남부지역 사람들입니다. 11월에 입국한 이들은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엄동설한 추운 겨울을 서울에서 온전히 지내며 조선의 겨울을 처음 경험한 것입니다. 집안의 출입문과 창문 모두가 유리가 아닌 종이로 되어 있어 밖의 찬공기가 방안으로 쉽게 들어와 방안의 물을 모두 얼음덩이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는 가장 어려운 짐이었습니다. 조선에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학교도 학원도 없고 통역관도 없어 한국어 배우는 일이 가장 큰 싸움이었습니다. 처음에 이들은 어딜가든지 벙어리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또 이, 벼룩, 빈대, 모기, 파리와는 주야로 싸우며 인내 하여야 했습니다. 먹는 것 역시 미국과 달라서 입국한지 몇 개월 만에 체중이 5-10Kg 빠지는 것은 누구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선교사들의 초기 생활은 하나님이 주시는 큰 시험이요 연단이었습니다.

 

7인의 선교사들은 선교사 공의회로부터 선교영역으로 호남지역을 할당 받고 조선땅에 들어온지 약 7개월이 지난 1893년 6월에 조선인 정혜원씨를 전주로 보내어 은송리 즉 지금의 완산동에서 초가집 하나를 매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894년 3월에는 데이트와 그의 여동생 매티가 전주에서 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3개월만에 전주선교를 중단하고 철수 하였습니다. 이유는 대규모 동학 농민운동이 일어나 전라도 일대를 석권하였고 이어서 전라 감영이 있는 전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전주남서쪽 모악산 앞으로 모두 집결하고 있었습니다. 동학교는 서양인 서양종교를 공격의 대상의 로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미국공사관으로부터 급히 철수하라는 전보를 받고 데이트 일행은 선교를 중단하고 철수했던 것입니다. 그후 약 2년이 지나서 1896년 초에 전킨과 함께한 선교팀은 군산으로 내려가 선교를 시작하였고 데이트와 함께한 선교팀은 전주로 내려가서 선교를 재개하였습니다. 군산에서는 그 해인 1896년에 2명의 세례자가 나왔고 전주에서는 군산보다 1년후인 1897년 7월17일에 5명의 세례자가 나왔습니다. 선교사들이 입국한지 5년만에 전주에서 수세자 5명이 나옴으로서 전주 교회가 이제야 확실히 세워졌다하여 서울의 선교사들 모두가 크게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호남지역에서의 선교의 가능성이 확실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125년전 전라도 전주에 처음교회가 세워지기까지 있었던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역사를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고 다음에는 교회역사관 전시실로 자리를 이동하여 사진을 함께 보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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